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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화 사람은 때를 알아야지 “도와주면 만유서옥을 열어주겠다?” “서로 주고받는 거지. 어때?” 엽현의 말에 장문수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엽현아, 엽현아… 내가 널 조금 과대평가했나 보구나.” “뭐?”
이 순간 엽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설마… 너는 원래 서옥을 열 생각이 없었던 건가?” 엽현이 지금까지 의아해했던 것 중 하나는 어떻게 계옥탑이 장문수와 여부자라는 강자를 피해 사유계로 달아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둘의 실력이라면 분명 탑을 추적할 수 있었을 터.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녀들이 처음부터 선각자의 물건이 있는 서옥이 열리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부가 사라지고 난 후, 일부 서원의 무인들은 만유서옥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만약 여부자가 버티고 있었더라면 아무 문제 없었을 테지만, 그녀는 곧 서원을 떠나버렸지. 논쟁이 격화되는 와중에 계옥탑이 서원을 탈출한 것은 어찌 보면 가장 좋은 결말이었다.” 이때 장문수가 크게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 그렇게 사부에게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누누이 말했건만…….” “그건 그들이 원래 악해서가 아니라, 선각자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엽현의 말에 장문수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궤변이냐?” “만약 그가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그들도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았을 거 아닌가? 아니, 어쩌면 선각자에 의해 서서히 교화됐을 수도 있지.” “흥! 사람의 본성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다면 네가 볼 때 만유서원 안에 나쁜 놈이 많은가 좋은 놈이 많은가?” 이 질문에 장문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당시 많은 이들이 만유서옥을 노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끝까지 지키려 했던 자들 또한 존재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파워볼게임사이트 만유서원을 만들어 사람들을 훈육한다는 선각자의 의도는 전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중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 아쉬울 뿐이지.” “…어찌, 처음부터 이런 시시콜콜한 논쟁이나 벌이려고 날 찾아온 것이더냐?” “물론 아니다. 아무튼 제안은 거절한 걸로 알고 돌아가겠다.” 엽현은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그가 만유서원을 찾은 이유는 역시나 장문수의 도움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가 합류한다면 당연히 엽령 쪽의 승산이 높아질 테니 반가운 일이겠지만, 현재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확실히 만유서원 입장에서는 만유서옥이 개방되지 않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세가 많이 약해진 만유서원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강자들로부터 서옥을 지켜내기란 매우 힘겨울 것이기 때문이다.
엽현은 이러한 장문수의 입장을 이해했기에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자리를 빠져나왔던 것이다.
바로 이때.
“거래 하나 할까?” 걸음을 멈춘 엽현이 뒤돌아보자, 장문수가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가 말한 대로 수라여제를 도와줄 수도 있다. 다만 싸움이 격렬해지면 몸을 빼는 조건으로 말이다.” “…조건은?” “나를 위해 칠색 부적 한 장을 그려다오.” 칠색 부적!
“장문수, 너 정도의 강자에게도 부적의 힘이 필요한 건가?” “후후, 그건 네가 아직 칠색 부적의 위력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훗날 기회가 되면 온전한 칠색 부적의 위력을 보여주마.” 고민 끝에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어떤 종류의 부적이 필요하지?” 이 질문에 장문수가 대답 대신 두꺼운 고서 한 권을 엽현에게로 날려 보냈다.
“제일 마지막 장을 펼쳐 보거라.” 그녀의 말대로 마지막 장을 펼치자, 큼지막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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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게 무슨 부적이지?” “일종의 파계부(破界符)라 할 수 있지. 차원 사이의 공간을 부술 수 있는.” “차원 사이의 공간? 혹시 이중차원을 말하는 건가?” “비슷하긴 한데 틀렸다. 그 부적이 있으면 삼중차원을 무너뜨릴 수 있다.” 순간 엽현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삼중차원이라니……. 이 부적의 힘이 그렇게나 대단한가?” “내게 있으면 그렇지만, 네 손안에 있는 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지.” “…….”
“마지막 장의 아랫부분에 제작방법이 나와 있으니 한 번 시도 해 보거라.” “음… 한 번 해보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엽현은 어디선가 책상을 구해와 부적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비록 이런 종류의 부적을 제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책에 설명이 상세하게 되어 있었기에 큰 무리 없이 방향을 잡아나갈 수 있었다.
한참 붓질을 하던 중 엽현이 돌연 장문수를 돌아보았다.
“장문수, 혹시 내가 생각보다 잘 그려내면 진천마냥 후환을 없애기 위해 날 제거하려고 들거나 하진 않겠지?” “그건 무능한 자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그 대답을 듣자 엽현이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역시 내가 인정한 호적수다워!” “…입을 꿰매버리기 전에 그리기나 하지?” 엽현이 히죽거리며 다시 부적 그리기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빠르게 손을 놀리던 엽현의 표정이 어찌 된 일인지 점점 굳어갔다. 아직 완성하지도 않았는데 부적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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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현은 기쁜 마음이 들었다. 비록 이 부적은 장문수에게 줄 것이지만, 이미 모양을 외워 놓았으니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더 그려낼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다시 두 시진 가량이 더 흘렀을 때, 부적에서 일곱 개의 영롱한 빛이 흘러나와 하늘로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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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사라지자, 엽현은 자신이 그린 부적을 장문수에게 넘겼다. 부적을 살펴본 장문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칠색 부적이군.” 장문수가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약속대로 네 누이를 한 번 도와주겠다.” “고맙군. 그리고 이거.” 엽현이 장문수에게서 받은 고서를 내밀자 장문수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내게 쓸모없는 실시간파워볼 것이다. 네가 가져가서 보거라.” “정말인가?” “그럼 내가 거짓…….” 장문수가 말을 끝내기도 전 서둘러 고서를 품속 깊숙이 집어넣은 엽현이었다.
“하하, 그럼 이 물건은 잘 쓰도록 하지. 그럼 나는 이만!” 포권을 취해 보인 엽현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때, 임소서가 장문수의 앞에 나타났다.
“어째서 그냥 보낸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실력이라면 무리 없이 놈을 죽일 수 있지 않소!” “후후… 그다음은? 계옥탑을 빼앗아 만유서옥을 열고?” “그야 당연한 것 아니오?” 이 말을 들은 순간 장문수의 눈에서 불꽃이 터져 나왔다.
“멍청한 놈! 네 머리는 도대체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냐? 허무의 땅의 그 묘지기와 잔녀 등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서옥의 봉인을 풀라고? 제정신인 건가?” “하지만 수라여제를 제외한 나머지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지 않소!” 그 말에 장문수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그들이 누군가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상황이 진전되면 결코 보고만 있을 위인들이 아니다.” “그들이 움직일 거라 어찌 확신하시오?” “흥, 그야 뻔하지 않겠느냐? 사부가 사라진 지금 저들은 두려운 것이 없다. 게다가 저들은 이미 오래전 한계에 이른 상태지. 다른 경지로 넘어가기 위해선 서옥 안에 있는 보물들이 반드시 필요하단 말이다. 그러나 저들이 감히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 여부자, 둘째 서옥의 진법, 마지막으로 자신들처럼 서옥을 노리는 경쟁자들의 존재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우리가 서옥의 봉인을 풀어 버린다면 저들은 옳다구나 하고 달려들 것이 분명하다.” “하, 하지만 서옥은 우리의 것이지 않소!” 그 말에 장문수가 임소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것이 아니라 사부의 것이지. 게다가 탑이 엽현을 주인으로 삼은 이상 엄밀히 말해 서옥은 엽현에게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순간 임소서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문수! 그대는 어찌하여 외부인의 편을 드는 것이오!” “누가 외인이라더냐? 탑의 인정을 받았으니 어떻게 보면 만유서원과 연관된 자가 아니냐? 게다가 설령 놈을 죽인다고 하더라도 뒷감당은 누가 한단 말이냐? 수라여제가 복수를 하겠다고 달려들면 네가 막을 테냐?” “그래도 우리에겐 진법이…….” “머저리!”
결국 폭발한 장문수가 소리쳤다.
“그 진법 때문에 서원이 그나마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진법이 깨지기라도 하면 한 달을 버티기 힘들다는 걸 왜 모르느냐!” “…….”
“너의 그 볼품없는 머리를 굴려서 생각이란 걸 좀 해 보거라. 매일 방안에 틀어박혀 책만 읽으니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게 아니냐?” “하지만 우리 무인들을 죽인 그 자를 살려 두는 건…” “그만하거라. 애당초 먼저 그를 건드린 것은 너희들이지 않았느냐? 약하다고 생각할 땐 무력을 행사하고, 간단치 않은 걸 알자 그제야 이치를 따지려 하니, 세상에 이런 머저리들이 어디 있느냐?” 순간 임소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출 장문수가 아니었다.

“임소서, 내가 네 속셈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만유서옥을 열어 스스로의 성취를 끌어 올리고 싶은 욕심뿐이란 걸 알고 있다. 지금까지는 모른 척 해왔다만, 이번 일은 서원 전체의 운명이 걸린 만큼 더 이상 참지 않겠다. 지금 이후로 엽현을 찾아간다면 네 머리를 잘라 산문 앞에 걸어 놓을 것이다. 사부가 없는 지금, 서원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짝 엎드려 있는 것뿐이란 걸 잊지 말도록. 알았느냐?” “…….”
“대답!”
외침과 동시에 장문수가 돌연 일장을 방출했다.
쾅-!
갑작스런 기습에 가슴을 얻어맞은 임소서는 피를 흘리며 멀찌감치 튕겨 나갔다. 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 그의 앞에 나타난 장문수가 그의 목을 움켜쥐고는 이글거리는 눈빛을 쏘아냈다.

“사부만 아니었더라면 너 같은 파렴치한 놈들은 이미 내 손에 다 죽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절대로 엽현을 건드리지 마라. 그 순간 죽을 것이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장문수가 임소서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알아들었으면 꺼져!” 장문수의 차가운 눈을 본 임소서는 감히 대꾸도 하지 못한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바로 이때, 장문수 앞에 웬 노인 하나가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문수, 말로 잘 타이를 수도 있지 않았느냐. 굳이 이렇게까지…” “흥! 사부만 아니었더라면 진즉 머리통을 반으로 쪼개 버렸을 거다!” “그러다 녀석이 네게 앙심이라도 품으면 어쩌려 그러느냐?” “저 겁쟁이 녀석이?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나저나 진천은 지금 어디 있지?” “사유계로 떠났다. 아무래도 소복을 입은 검수를 찾아간 모양인데, 우선은 지켜보는 중이다.” 노인의 말에 장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허튼 짓거리 하려 하면 바로 죽여 버려!” “그렇게 할 필요까지야…….” “아니, 지금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숨죽이고 기다리는 것뿐이야. 형국이 변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장문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리 서원은 이미 예전에 그 위대했던 서원이 아니야.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그때의 우월감을 버리지 못한다면 패망할 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