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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화 증거를 대거라!
계옥탑!
목소리는 다름 아닌 계옥탑 안에서 들린 것이었다.
‘누구지? 설마 육 층인가!?’ 엽현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오 층의 제형도 대단한 실력자였는데, 6층 존재의 실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순간 엽현의 머릿속에선 앞으로 있을 법한 수많은 나쁜 결과들이 떠올랐다.
이때, 조금 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꼬마, 긴장할 거 없어. 안 잡아먹는다.] “…헤헤, 깨어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오냐.]
한 마디 섞어 본 엽현은 마음속으로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상대는 다른 자들과는 달리 그래도 대화 의지가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보기 안쓰러우니 조금 도와주마. 지금부터 네 검은 물고기다. 그리고 너 스스로를 물이라 생각 해 보거라.] “…….”
잠시 말을 곱씹어 보던 엽현은 무릎을 쳤다.
육 층 존재의 말은 검이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검 안에 물, 즉 검의를 주입하라는 소리였다.
엽현은 곧장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의 검의가 다시 한번 사방으로 흘러나오자, 손안의 나뭇가지가 점점 떨려왔다.
검의로 검을 느끼고, 검 안에 녹아든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흘렀다.파워볼게임
대략 한 시진쯤 지났을 때, 나뭇가지 끝에서 갑자기 한 줄기 검광이 뿜어져 나갔다.
나비처럼 사뿐히 솟구쳐 오른 검광은 이내 구름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고요한 장내, 엽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달라! 확실히 달라!’ 방금 전 그가 쏘아 올린 검광은 비검과 비교했을 때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그것은 생명이 있고 없고의 차이였다.

이때, 다시금 들려오는 목소리.
[검이 있기에 검의가 있고 검도가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유의해서 앞으로도 정진할 수 있도록 하거라.] 엽현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저, 외람되지만 비검의 속도와 힘을 향상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지금 너의 비검은 네 육신이 견딜 수 있는 한계치에 도달했다. 현재로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육신을 강화하는 방법밖에는 없단 말입니까?” [그것도 한 방법이다. 다만 그것이 정 어렵다면 다른 방법도 있다.] ‘다른 방법!?’ “그,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 대답은 검의에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알려 주십시오!” [녀석, 급하기는……. 너는 지금 무엇으로 비검을 날리느냐?] “기(氣)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대신 검의를 검에 집중해 보거라.] 엽현이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검의를 검에 집중시킨다라…….’ 그가 이러한 의도를 마음에 품는 순간, 검이 그의 손을 벗어나더니 순식간에 천 장 밖으로 날아갔다.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빠, 빠르다!’ 방금 전 비검의 속도는 이전과 비교했을 때 두 배 정도 차이가 났다.
[기와 달리 검의는 형체가 없어 매우 가볍다. 이 때문에 빠르게 공간을 꿰뚫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네 노력여하에 따라서 개선하는 것도 가능하다.] ‘더 빠르게 할 수도 있다고?’ 엽현이 다시 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손안에 기검이 아닌 검의가 뭉쳐 형성된 의검(意劍)이 나타났다.
그다음은 당연히 미친듯한 수련만이 남아 있었다.
노력 여하에 따라 검의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까지 그는 비검을 사용할 때면 기를 주입해서 날리곤 했다. 하지만 기를 빼고 그 안에 검의를 채워 넣으니 확실히 더욱 가볍고 빠르게 날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동안 엽현은 검의에 대해 무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엽현은 그동안 검의를 연구하는데 소홀히 한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배움엔 결코 지각이 없는 법.
엽현은 이때부터 검의를 붙들고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열흘이 지났다.엔트리파워볼
산봉우리 위.
엽현의 통제 아래 두 자루의 비검이 끊임없이 하늘을 비행하고 있다. 어느 순간, 비검이 검광으로 변하더니 하늘 전체가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엽현이 손을 뻗자 두 자루 검이 그의 손안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그가 검의를 집중해 만든 검들이었다.
검을 바라보는 엽현이 입가를 실룩였다. 그의 비검은 이미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공간도칙까지 혼용했을 때, 그 속도는 삼 할가량 더 빨라질 수 있었다.
삼 할.
이 수치는 고수들의 싸움에선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
삼 할의 속도를 더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앞으로 조화경 강자와 싸우면서 기습이 아닌, 정면 승부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 실력만으로 이제 그는 조화경을 넘어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엽현은 만족한 웃음을 띠며 검을 갈무리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다른 고민에 빠졌다.

요 며칠간, 노인이 한 번도 모습을 비추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처음에 얘기했던 소 사숙이라는 자 역시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다.
‘뭐, 상관없겠지.’ 잠시 후, 그는 산 아래를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엽령을 찾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신무성에 온 뒤로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엽령을 만나지 못했다.
그는 동생이 걱정이 돼서 더이상 견딜 수 없었다.
검도 좋지만, 그에겐 역시 엽령이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령아, 오빠가 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무원 입구에 도착했다.
무원은 신무성 북쪽의 무신산(武神山)이란 곳에 위치해있었다. 검종이 있는 남쪽의 망공산과는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태다.
무신산으로 오르는 입구엔 검종과 마찬가지로 조각상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엽현이 고개를 들어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여인의 모습을 한 조각상이었다.
‘이 여자가 무신(武神)……?’ 만난 적 없는 사람이었지만, 엽현은 호기심이 동했다.EOS파워볼
도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무신의 칭호가 붙은 걸까?
이때 엽현은 문득 육 층 존재가 생각났다.
“혹시 무신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일련의 시간 동안 엽현은 육 층 존재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수감자들과는 달리 엽현의 질문에 매우 친절히 대답하기도 했다.
잠시 후, 육 층 존재의 음성이 들려왔다.
[한 번… 오래전에 스치듯 지나친 적이 있었지. 하지만 결코 무신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자는 아니었다.] “헤헤, 무신조차 그렇게 보시다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나저나 선생께선 사유계의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 있던데……. 정말 그렇습니까?” [음, 그 말을 해 준 것이 당시 영혼 상태로 내 방에 들어왔던 그놈이더냐?] “예, 그렇습니다. 제형이라 하는 자입니다.” 이때 계옥탑 육 층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후후, 사실 그 자의 실력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탑에 너무 오래 갇힌 탓에 실력에 퇴화가 온 것이지. 물론,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검수의 상대는 될 수 없겠지만 말이야.] 검수!
그가 말하는 검수란 분명 그때 제형을 제압한 남자일 것이다.
엽현의 머릿속엔 당시의 장면이 여전히 생생했다.

그날 그가 보여줬던 실력은 천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내 내력이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말해 주어도 너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네가 경계해야 할 대상은 탑에 갇힌 존재들이 아닌 이 계옥탑 자체다.] ‘탑을 경계하라고?’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탑이 너를 주인으로 삼은 것은 그 여인 때문이라는 것을 너도 알 것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너와도 인연이 있을 수 없었겠지.] “…….”
엽현은 당시 이 층 존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당시 그는 계옥탑이 천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을 따르고 있는 것이라 설명한 바 있었다.
[그래, 탑이 너를 진정한 주인으로 여기지 않는 상태에서 본신의 힘을 모두 회복하게 되면 어찌할 것 같으냐? 그래도 계속해서 너를 따르려 할까?]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저를 죽이지만 않으면 상관없습니다.” [만약 죽이려 한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육 층 존재가 가볍게 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이제 너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탑은 오유계의 물건이다. 내 너를 비하할 생각은 없다만……. 탑의 전 주인에 비해 너는 너무나도 약하다. 아니, 약하다는 말조차 붙이기 힘들 정도의 수준이라 할 수 있지.] 순간 엽현은 울컥하는 것을 참았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수련해 왔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조금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네 실력이 그렇다고 해서 다른 것까지 형편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저 검의 주인들……. 나는 아직까지 그들이 왜 너를 도우려 나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좋은 배후를 둔 것도 실력이라 한다면, 네 실력이 그렇게까지 쓰레기인 것은 아니다.] 듣고 있던 엽현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갔다. 은근히 자신의 약점을 돌려 까는 것이 꽤나 아팠던 것이다.
기분이 나빠진 엽현은 더이상 대화를 잇지 않고 무원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막 무원으로 향하는 돌계단을 오르려 할 때, 한 청년이 나타나 엽현을 위아래로 기분 나쁘게 훑기 시작했다.
“검수?”
청년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수가 무엇 하러 무원을 찾아온 것인가?” 엽현이 차가운 목소리에 미소로 화답했다.
“이보시오, 형장. 나는 소란을 일으키러 온 것이 아니라, 그저 동생을 만나러 왔을 뿐이오.” “동생?”
청년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로투스바카라
“이름은?” “동생은 엽령이오. 그리고 안란수와 연만리라는 친구도 찾으러 왔소.” 그 말을 들은 청년의 표정이 순간 변했다.
“그러니까… 동생이 엽령이고 안란수와 연만리가 친구다?” “하하, 바로 맞췄소. 그들을 좀 불러줄 수 있소?” 그 순간 청년이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 파렴치한 검수 놈 같으니! 네깟 놈이 감히 우리 무원의 여신들을 탐하는 것이냐! 썩 꺼지거라! 가서 검종의 못난이들이나 찾아 보거라!” 그 말을 들은 엽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대가 왜 이리 화를 내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던 것이다.
한편 엽현이 움직이지 않자 청년은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
“아직도 안 꺼지고 뭐 하는 게냐!” “저기 흥분하지 말고 내 말을 좀 들어 보…….” “말을 듣기는 무슨! 좋은 말로 할 때 가는 게 좋을 것이다. 만에 하나 학장 눈에 걸리기라도 하면 그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을 테니!” “…….”
엽현은 사정도 들어보지 않고 화를 내는 청년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듣기는 했지만, 무원과 검종의 사이가 이렇게나 나빴단 말인가?
엽현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엽령과 친구들이 있는데 볼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던 것이다.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소란스러운 게냐?” 이때, 청년의 뒤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엽현이 고개를 들자 한 여인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인은 대략 이십 대 초중반의 나이였다. 가느다랗고 하얀 발목 위로 꽃무늬 치마가 걸쳐져 있었으며, 아름다운 얼굴 뒤편으로 흘러내린 흑발이 뭇 남성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를 발견한 청년이 황급히 예를 갖춰 인사했다.
“방설(方雪) 사저.” 방설이라 불린 여인이 남자 앞으로 다가섰다.

“그래, 무슨 일로 소란을 피운 게냐?” “그것이… 검수 하나가 나타나 안란수 사매를 찾는다기에…….” 방설의 눈빛이 엽현에게로 꽂혔다.
“검종의 무인인가?”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나는 정말로 사람을 찾으러 온 것이오. 결코 다른 악의는 없소.” 방설이 엽현을 향해 계단을 내려섰다.로투스홀짝
“안란수를 찾는다?” “그렇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기별을 좀 넣어 주시오.” “…무원이 왜 검수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지?” 방설이 경계를 풀지 않자, 엽현은 다소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보시오 소저. 나는 정말 순순히 사람을 찾으러 온 것이오. 엽령이 나의 동생이고 안란수와 연만리가 나의 절친한 친구들이오. 그들에게 가서 엽현이 찾아왔다고 하면 알아들을 것이오!” 엽현은 이 순간에 연만리 등에게 연락을 취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전음이 통하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그들은 어떠한 특수한 환경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엽령이 네 동생이라고? 하하하하!” 이때,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화려한 장포를 입은 남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엽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게 사실인지 우리가 어떻게 믿느냐? 증거라도 있느냐?” 순간 엽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이보시오. 내가 그 아이의 오라비라는데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오? 정 의심스러우면 직접 가서 물어…….” 이때 남자가 손을 저으며 말을 끊었다.
“증거도 없이 누가 네 말을 믿겠느냐? 듣거라, 엽령은 나의 여인이고 어제도 함께 밤을 지새웠다. 내 말을 믿을 수 있느냐?” 그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의 안색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이와 동시에 장내에 한 줄기 검광이 번뜩였다.
촤악-!
웃고 있던 남자의 목이 허망하게 잘려나가더니 계단 밑으로 통통 굴러떨어졌다.
장내에 잠시 겨울 같은 정적이 흘렀다.”